책을 읽고 좋은 구절을 남겨두었다가 한 번씩 필사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읽었던 책들의 좋은 구절은 빠짐없이 독서기록 어플에 남겨두고 있는데 함께 공유해 봅니다 :)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책은 김정선 님의 <동사의 맛>이에요.
필사하기 좋은 책 <동사의 맛> 소개
이책을 처음 알게 된 건, 표지 디자인을 한 이기준 님 인터뷰를 어느 잡지를 통해 보게 되었고, 내용에 딱 맞는 심플하면서도 눈이 가는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일단" 사게 되었어요. 디자인에 끌려서 산 책이었는데, 내용은 더할나위없이 좋아서, 한동안 손에 늘 들고 다니며 공부하듯 읽었던 책입니다. 텍스트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정말 좋아할 책이에요. 저는 이 책 이후로 책을 출판한 유유 출판사까지 사랑하게 되서, 유유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일단" 사야 하나? 생각합니다. ㅋㅋ
<동사의 맛> 추천 이유
저자는 20년 넘도록 잡지와 단행본의 문장을 다듬어 온 전문 교정자입니다. 작가, 번역가, 기자는 물론 편집자도 자주 헷갈리는 우리말 동사를 <가려 쓰면 글맛 나는 동사들>과 <톺아보면 감칠맛 나는 동사들>로 분류하여 짧은 에세이속에서 설명해주는 책이에요. 처음 보는 동사도 많았고, 놀라다 / 놀래다 처럼 비슷한 말인데 그 쓰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해 애매모호하게 느껴졌던 동사들을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어요. 맞춤법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교정교열에 관한 책을 3-4권 정도 샀는데, 다른 책들은 규칙을 단순하게 설명해주는 딱딱한 느낌의 책이라면, 이 책은 모든 이야기가 훌륭한 에세이로 즐겁게 읽히면서, 동사의 쓰임까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어요. 그래서 책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언젠가 꼭 모든 문장을 필사해보려고 생각 중인 책이기도 합니다.
<동사의 맛> 필사하기 좋은 구절 소개
걷다 / 걸다 (p. 51)
누군가와 나란히 걸으면서 걸음의 보폭은 물론 마음의 보폭까지 맞아 서로 조금도 불편해하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두 사람은 오랫동안 같이 걸을 수 있으리라. 함께 걸어가고, 걸어 다니고 싶은 사람.
귀담아듣다 / 귀 기울여 듣다 (p.63)
쉰을 앞두고 남자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헛된 잣대들 속에 숨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말을 하염없이 귀담아듣고 싶어졌다. 아무런 판단이나 평가도 내리지 않고 하루가 되었든 석 달 열흘이 되었든 십 년이 되었든 하염없이 듣고 싶어졌다. 세상에는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이 더 많을 거라고 믿었는데 이젠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먹고사는 일도 핑계가 될 수 없고 신념이니 가치관 같은 것도 피난처가 될 수 없을 만큼 간절한 일. 그건 바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귀 기울여 듣는 일이었다.
끼치다 / 미치다 (p. 67)
미치는 건 상대에게 가닿는 것이면서 상대에게 몰두하는 것인 동시에 정신을 잃는 것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떻게 미치든 상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미칠 뿐이다.
믿다 / 믿기다 (p. 125)
살다보면 믿기지 않는 일들을 당할 때도 많고 사는 일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볼 때도 그렇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내다볼 때도 그렇다. 그러고 보면 믿는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에 신뢰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합리적인 계산이 통하지 않는 것만이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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